나 1:9-15



 서론

 1.시편 73편의 말씀은 이 땅에서 고난당하는 자들이 늘 외워야할 말씀이다.시의 저자는 악인들이 형통하는 모습에서 많은 갈등을 느껴야 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을 겪는데 하나님없이 살아가는 악인들은 형통하는가?


 2.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예수믿는 것을 육신의 문제와 결부시키려 한다.적어도 예수 믿는자는 안믿는 자와는 달라야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형편이다.


 3.우리의 소망이나 생각은 어떻든간에 실제 우리의 모습은 소망과는 거리가 멀때가 많이 있다.이러한 우리의 궁금증에 성경은 답하고 있다.


 I.악인은 결코 형통할 수 없다(9-11,14).

  A.앗수르와 니느웨는 하나님의 백성을 지배했었다.

    1.악인의 득세였다.그들은 이스라엘을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괴롭혔다.

    2.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의 고통을 주었고 절망감을 느끼도록 했다.

    3.그러나 하나님은 침묵을 깨트리고 악인의 심판을 선언하셨다.본문을 통하여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을 살펴보자.


  B.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말자.

    1.지금의 세상은 양심을 지켜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세상이라고들 탄식을 한다. 과연 그럴까?

    2.지금 현재도 미련할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며 타의 모범을 이루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지난번 경제정의 실천연합에서는 한국유리를 최우수 모범기업으로 선정을 했는데 그 회사야말로 믿음의 바탕위에 이루어진 기업이다.그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많은 기업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3.적당히 살고 편법을 행하는 것이 우선은 성공이 빠르게 보인다.그러나 인생은 그리 짧지많은 않은 것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종말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4.만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인하는 자라면 적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류를 이루어도 괜찮다.그러나 하나님을 살아계신 아버지로 믿는다면 악인의 순간적인 형통에 현혹돼지 말아야 한다.

    5.부당한 방법으로 일확천금하다가 법의 심판을 받는 하루살이 인생들을 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이것이 악한 자들의 형통이다.과연 부러움의 대상일까?


 II.고난에는 뜻이 있다(12-13,15).

   A.고난은 훈련이다.

    1.고난이 없으면 교만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그것이 우리 인간의 현실이다.

    2.고난은 성도를 기도하게 만든다.고난이야 말로 기도의 스승이다.고난이 없다면 기도할 수 없다.목마른 자라야 물을 찾는 것이다.

    3.모든 신앙의 위인들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했다.아브라함,야곱,요셉,모세,여호수아,욥의 신앙은 결코 저절로 되어지지 않았음을 주목하자.

  

  B.의인은 고난은 악인에 대한 심판의 근거다.

    1.아브라함은 자신의 후손들이 400년간 광야에서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전달을 받는데,그 이유는 아모리족속의 심판과 애굽에 대한 심판때문이었다.

    2.앗수르와 니느웨는 하나님없이 살아온 포악한 족속이다.하나님은 이들을 통하여 나태와 안일에 빠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훈련하심과 동시에 악에 대한 심판의 본을 보여주셨다.

    3.니느웨의 멸망은 유다에게는 고통의 끝이었고 악인에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선포였다.

    4.성도가 땅에서 겪는 모든 고난에는 뜻이 있다.감정을 버리고 말씀에 서서 하나님의 섭리를 살피자.


 결론 

 1.우리 모두는 형통을 원한다.고난을 즐거워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2.그러나 형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의 과정을 거쳐야 함을 잊지말자. 투자가 없다면 결실은 없다.

 3.악인의 형통은 눈깜짝할 사이요,잠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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